빚 갚으려 창살 뒤에.. 일본의 그늘

요시와라(에도시대 이래의 유곽가) 매춘부의 사진이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 자료는 무명의 사진작가에게 1890~1900년 정도에 찍혔다고 알려졌다. 알록달록한 기모노를 입고 창살 뒤에 갇혀 누군가의 ‘구매’를 기다리는 여성들의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악명 높은 홍등가는 1617년 에도(현재의 도쿄)에서 매춘 규제가 벌어지자 100개가 넘는 나무 창살을 지었다. 초기 550여명에 불과했던 매춘부의 수는 1893년, 9000명을 넘겼다.

당시 매춘부들이 유곽에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는 일은 ‘하리마세’라고 불렸다. 사진 속에는 고상하게 차려 입은 ‘상급’ 매춘부 뒤로 ‘하급’ 매춘부들이 나무 창살에 갇혀 있는 사창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난한 시골의 가족이 딸을 파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소녀들은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서 무려 7세라는 어린 나이에 창살 뒤로 밀려나기도 했다. 매춘부들은 보통 5~10년간 활동하지만, 빚이 큰 경우 평생을 갇혀있기도 했다. 운이 좋다고 하기도 꺼림칙하지만, 몇몇은 ‘상급’으로 분류되어 ‘엘리트’ 특수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일조차 흔치 않았다.

당시 남성들은 신분이나 재산에 관계 없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성매매가 가능했다. 심지어 홍등가에서 찍힌 사진들은 외국 방문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원하는 상대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었다.

매춘부로서 성공해 자신의 몸값을 지불하거나, 부유한 남자가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여성을 ‘구매’해 아내나 첩으로 두지 않는 이상 요시와라를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일본 1000엔 지폐의 주인공인 노구치 히데요는 요시와라의 단골로서, 하룻밤 만에 당시 돈으로 500엔을 탕진했다는 일화가 있다.

해당 기사는 이 여성들에게 ‘매춘부(prostitute)’라는 표현을 사용해 ‘사실상 성노예로 팔려간 여성들에게 무례하고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일본도 2차 대전에 같은 행위(위안부)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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