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지옥선 리스본마루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42년, 미국 잠수함은 일본 화물선 리스본마루에 어뢰를 발사한다. 7천 톤 급의 선박에게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미군은 어뢰 두 발을 추가 발사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자 미군은 수심이 너무 깊어 계산 오류가 났다고 가정하고 한 발을 더 발사하며 리스본마루에 다가간다. 리스본마루는 방향을 틀었지만, 마지막 어뢰에 격추 당해 선박에 큰 구멍을 남기며 일본군이 사망한다. 이후 일어나는 일본의 만행은 수중에서 가장 많은 영국인 사상자를 낳는 역사가 된다.
리스본마루는 홍콩에서 물품을 나르는 중이었지만, 선박 지하에는 병균이 서식하고 쥐가 들끓는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영국의 전쟁 포로 1834 명이 노예로 수감되어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포로들은 폭발 소리와 일본인들이 동요하는 소리를 들었고, 이내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리스본마루가 침몰하는 데에는 25시간이 걸렸지만, 일본인들은 포로들을 구하긴커녕 죽게 만드는 결정을 내렸다. 포로들은 선박을 탈출하면 총살 당하거나 다른 배에 치여 사망했고, 상어가 출몰하는 지대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한편 미군은 일본 화물선에 포로들이 수감되어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만 무장되어있는 것을 목격해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폭발 와중에도 일본인들은 포로들을 관리했고,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뒤엉켜 수감되어 있었다. 수감자들은 열악한 환경과 끔찍한 상황에도 설마 일본인들이 대학살을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인들만 구조되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상황을 파악했다. 단 한 명도 살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심지어 학살을 위해 총을 쥔 일본인들이 남겨졌다. 포로들은 어둠 속에서 패닉하기 시작했고, 리스본마루가 격추된 지 약 24시간 뒤엔 총격이 시작되었다.
포로들은 선박이 침몰하면서 잔해에 중상을 입기도 했으며, 빠져나가려고 하면 바로 총살당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본인들이 포로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가 총격을 가하거나,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포로들의 최선은 상어들까지 몰린 바다에서 죽지 않고 가장 가까운 섬까지 헤엄치는 것이었다. “살아남는다면 나 대신 아내에게 소식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생존자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결국 운 좋게 중국 해안에 다다른 이들은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1006명의 생존자가 남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본인들은 곧 돌아와서 그들을 다시 빼앗아갔다.
리스본마루의 선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에 그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중국의 영화 감독 Fang Li는 정부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만행은 어떻게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희생자들은 역사 속에서 기억될 것이다.